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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은 도시 다른 세계를 가진 마닐라 여행(4)

같은 도시 다른 세계를 가진 마닐라 여행(4)
 











잠든 '레메디어스서클'과 농도짙어 가는 주말밤 채색

노천 카페를 뒤로 하고 '레메디어스서클' 근처를 다다랐을때는 이미 10시를 훌쩍 넘긴 시간이었다.
눅눅한 어둠을 배경으로 Bar와 카페들이 뿜어내는 화려한 채색과 음악 그리고 다양한 인종의 행렬이 골목과 골목을 메꾸어 넣고 있었다.
그러나 정작 이 거리의 이정표가 되었던 '레메디어스서클'에는 노숙자들의 깊은 숨소리로 무거운 밤이 내려앉아 있었다.
 "마닐라에 왔다면 라이브 카페를 꼭 즐겨보라!"는 인터넷 풍문이 떠올라 여행책자를 뒤적여 평이 좋은"카우보이 그릴"으로 향해 걷기시작했다. Bar, KTV, 카페 등 유흥업소 입구에는 어김없이 호객행위 행렬이 끊임없이 이어지고 있었고 잠시라도 호객꾼 쪽으로 눈길을 돌리라치면 그들은 기다렸다는 듯이 억지스럽게 눈빛을 마주치고선 익숙하지 않은 '따갈로'억양 썩인 영어로 속사포처럼 말을 쏟아내곤 했다.
한마디 이상 응답을 했다간 성가신 대가를 치러야 할 듯 했기에 딱딱한 외마디 비명처럼 "No"를 반복하며 무안함을 안겨주었다.
이거리를 고작 두번째 발걸음이었으므로 눈에 익어버린 클럽과 Bar들이 눈에 속속 등장했고, 굳이 주위를 심도깊게 관찰하며 목적지를 찾지않았지만 목적지인 '카우보이그릴'이 한블록 왼쪽 저편에 보였다.
 





카우보이그릴







'카우보이그릴'에는 이미 빈자리를 찾을 수 없을 만큼 사람들이 콩나물 시루처럼 빼곡히 밖혀있었고 라이브공연이 한창이었다.
 웨이터가 문앞으로 급히 다가서며 부담스런 환대로 우리를 맞았지만 무대가 잘보이는 자리를 찾기위해 까치발세워 두리번 거리느라 대충 인사를 받았다.
 "몇명이죠?" 웨이터는 음악소리에 자신의 목소리가 파묻히랴 의식이나 한듯 몸을 최대한 바싹 붙여 목에 살짝 핏대가 설듯한 크기의 소리로 물었다.
웨이터가 말을 걸고 있다는 사실조차 인지하지 못하고 두리번 대던 친구녀석이 미간을 찌프리며 얼굴을 입구밖쪽으로 두어번 빠르게 돌렸다 놓으며 나가자는 신호를 보내왔다.
그제서야 나는 얼굴을 돌려 "Sorry"만을 남기고 더이상의 빈자리 독촉을 피하듯이 Bar로 들어오는 백인남자와 순번을 교체하듯 살짝 어깨 작은 터치며 빠져나왔다.
아쉬웠지만 '레메디어스'로 접어들기전 수많은 라이브카페를 스캔해둔 터라 선택의 기회는 넉넉하리라 판단하고 다시 왔던 길을 거슬러 올라가며 사람들이 이제 막 몰려들어가기 시작하는 작은 라이브 카페로 들어섰다.
'카우보이그릴'와 비교하자면 규모면에서 초라했지만 소규모 밴드가 공연하기 충분히 자유로운 무대와 퍼포먼스를 놓치지 않을만한 위치에 테이블 차지할 수 있었던 그 두가지만으로 충분했다.












만족스러운 테이블 위치를 확인하고 의자를 밀쳐내고 있었을때 다부진 체격의 웨이터가 부담스러울 정도로 친근한 태도로 오른손을 들어 하이파이브를 청해왔다. 
망설임 없이 그의 자신감에 질세라 오른손 손바닥을 몸쪽으로 끌어당기며 엄지와 검지사이로 네손가락을 밀어넣어 팔씨름 포메이션을 만들어 손을 움켜잡고 오른쪽 어깨를 상대방의 오른쪽 어깨에 살짝 부딪히며 왼손으로 가볍게 등을 치고는 식의 웨스턴 싸나이들의 인사를 나누었다.
웨이터는 엄지 손가락을 치켜 세우며 잠시 테이블 가장자리에 서 있다가 무릎을 쭈그려 가슴팍을 테이블 가장자리에 밀착시키며 메뉴를 건네었다.
공연이 시작되기 전이었지만 스피커에서 흘러나오는 흥을 돋우는 클럽음악과 공연이 임박했음을 알리는 악기들의 튜닝소리로 귀가 얼얼해왔다.
소음 따윈 의식하지 않는듯 웨이터는 최대한 몸을 탁자에 붙여 나의 왼쪽 귀를 향해  "산미구엘?" 짧고 강하게 당연히 맥주 주문을 할 것이라는 뉘앙스로 주문을 유도했다.











살짝 취해보고 싶기도 했지만 진부해져버린 '산미구엘'은 더이상 이국적인 특별함이 없었으므로 웨이터 쪽으로 눈을 돌리지않고 빳빳히 코팅된 메뉴를 부자연스럽게 넘기다, "보드카?" 물음도 대답도 아닌 어투로 웨이터에게 말을 건네자 웨이터는 살짝 희열이 넘치는 눈으로 다시 엄지손가락을 치케세우며 다시 하이파이브를 요구해왔다.
이후 두마디 이상 대화를 끝내면 하이파이브 해야했다. 몇번이고 흥쾌히 손을 내밀어 손이 얼얼해질정도로 반복했다.
마치 서로의 뇌리에 "나는 쿨해!"를 각인시키는 듯한 과시효과에 가까웠다.  
짧게 손바닥을 마주치고는 "한병은 너무 많으니 반병은 되나요?"라고 묻자 웨이터는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물론이죠"라는 말을 남기고 Bar 쪽으로 몸을 돌려 인파속으로 사라졌다.
여성 보컬 두명과 한명의 남성 보컬 그리고 기타,베이스.드럼 등으로 구성된 혼성 밴드가 무대로 올라와 유창한 영어로 밴드의 소개를 마치고 한시간 가량의 공연을 이어갔다.
어느 정도 흥이 오르자 밴드의 여성멤버가 관객들 하나 둘 손을 끌어 무대로 유도하기 시작했고 무대로 진출한 관객들은 어색한 몸놀림은 잠시 누구도 의식하지 않는듯 춤의 무아지경에 빠져들기시작했다.
 노래, 퍼포먼스, 연주 모든 면에서 이렇게 작은 공간에서 공연하기엔 아까울 정도였다.
다양한 장르의 준비된 공연, 신청곡 퍼레이드, 생일 축하공연 등 약 1시간가량의 에너지 넘치는 공연이 끝나자 공연전 스피커에서 흘러나오던 클럽댄스음악이 힘없이 흘러나왔다.
갑자기 흐물흐물 흐리멍텅해진 분위기를 견딜 수 없었는지 대부분의 관객들이 마시던 병맥주에 입을 떼고는 일어서 주섬주섬 소지품을 챙겼다.
나는 좀더 앉아 있으려 했지만 강한 환각제를 맞은듯한 고막에 허술한 인공음에 힘이 빠져버리는 듯 했고 더욱이 인파마져 빠져 나가니 모두 퇴근한 사무실에 야근하기 위해 혼자 남아버린 끔찍한 기분이 들었다.
보드카를 몇 목음 남겨두고 웨이터와 마지막 하이파이브를 교환하며 거리로 나섰다.











클럽 골목의 장미 꽃 파는 거리의 아이들


시간은 자정으로 차오르고 있었지만 거리는 라이브카페로 들어가기 전보다 더욱 채색이 짙어지고  화려해지고 있었다.
다시 깊이 잠든 '레메디오스서클"을 우측으로 절정에 다다른 주말밤의 클럽골목으로 향했다.
목을 뜨겁게 달구던 '보드카'의 기운이 입가와 얼굴을 붉긋붉긋한 강한 여운을 남기고 있었다.
클럽골목이라 명명하도록 키워드를 제공한 유명한 클럽"인솜니아"와 "소셜리스타" 앞을 지나칠때 였다.
떨어질듯한 슬리퍼와 덕지덕지 색이바랜 셔츠, 기름때에 쩔어버린듯한 반바지 그리고 그 밑으로 까맣게 물들어버린 무릎관절의 전면부를 꺼리낌없이 드러내고 있는 여자아이들 한 무리가 한손에 장미 한송이씩을 들고 "한송이만 사줘요" 번갈아가며 조르듯 외치며 우리의 주변을 맴돌았다.
 이 아이들 중 어느한 아이의 장미만이라도 구입한다면 다른 아이들이 떼를 쓰며 성난 개미떼처럼 달려들것이 뻔했기에 페이소스를 자아내는 아이들의 눈을 보지 않으려 부단히 애쓰며 어제 들렸던 노천카페에 자리를 잡고 보드카의 기운을 달래줄 음료를 주문했다.
 장미를 구걸하듯 팔던 아이들은 쉴세없이 우리의 뒤를 따르다 일부는 관광객이라 치부되는 백인이나 흑인들에게 흩어졌고 또 몇몇은 카페 점원에게 점근금지령을 받은듯 더이상 구걸을 하지 못하고 카페 주위를 맴돌고만 있었다.
 잠시 음료를 마시며 앞주머니를 두툼하게 체워놓던 아이폰을 버릇처럼 탁자위에 내려놓고 간헐적으로 불어오는 바람을 즐기며 친구와의 이야기에 열중 하고 있었다. 
테이블을 담당하던 점원과 이야기를 나누던 깔끔한 힙합복장을한 20대로 보이는 세명의 사내들이 탁자를 가르키며 짧은 단어들을 조합하여 어렵사리 한문장을 만들어"No good " 속삭이듯 지적하며, 주머니로 넣으라는 수신호를 보내왔다.
아이폰을 재빨리 앞 주머니로 가져가며 얼굴을 들어 그들이 서있는 방향으로 돌리며 "여기 소매치기 많아요?" 물었다.
 세 사내는 서로 멀뚱멀뚱 번갈아 보며 웃기 시작했다. 그리고 셋 중 가운데 힙합모자를 쓴 사내가 고개를 끄덕이며 "Yes" 라고 짧게 대답하고 옆에 테이블 근처에 있던 여점원과 '따갈로어'대화를 이어갔다.
잠시 무료하던 차에 이들과 잠시 말동무도 괜찮을 듯해서 다시 말을 건네고 싶었지만 우리를 신기해 하면서 어려워하는 눈치가 보였다. 그러나 게의치 않고 다시 말을 꺼냈다.
"저기 클럽가는 길이예요?" 셋은 다시 말걸어올지 예상못했다는 듯 흠칫 놀라긴 했지만 가운데 힙합모자 사내가 모자를 비스듬히 걸쳐진 모자 챙을 살짝 잡았다 떼면서 "네 인솜니아 로 ... 갈꺼예요" 대답을 하고는 뻘쭘했던지 표정이 이내 조금 진지해졌다.
다시 친구들쪽으로 돌아설 틈을 주지않고 좀 긴대답을 요하는 질문을 던졌다.
"같은 구역의 두 클럽 '인솜니아'와 '소셜리스타'의 차이가 있어요?"
그러자 힙합모자 사내는 답은 알고 있지만 단어를 조합하는 중인지 몇초간의 공백을 두고서 단어 하나하나를 조합하며 "인솜니아는 300 Php 입장료를 내야 출입이 가능하고 소셜리스타는 입장료는 공짜예요" 대답을 마치고선 친구들 쪽으로 얼굴을 돌리고 장난스럽게 웃었다.
나는 덩달아 웃으며 "반가웠어요" 인사를 남기며 악수를 주고 받은 후 음식값을 탁자에 내려다 놓고 일어섰다. 
마닐라 클럽을 경험해봄도 좋을 듯 해서 계획에는 없었지만 잠시 들러보기로 하고 클럽이 위치한 골목이 시작되는 방향을 바라보며 잠시 걸었다. 






소셜리스타








두 클럽이 나란히 있었지만 '인솜니아'쪽의 외형이 '소셜리스타'보다는 화려하기도 했고 눈에 두드러지게 사람들의 진입이 줄지어 이어지고 있었다.
입장료 300패소를 지불하니 덩치 큰 두사내가 동그란 야광 스템프를 안쪽팔목에 찍어주었다.
바닥의 미세한 진동을 만들어내는 음악의 진원지를 따라 안쪽 문을 열고 들어갔다.
우측으로는 작은 Bar가 있었고 좌측으로는 넓지않은 공간에 8개 내지 10개의 만석인 테이블이 메우고 있었다.
좌측 Bar에는 한껏 차려입은 필리핀 여성들이 Bar에 따닥따닥 붙어 무표정하게 앉아 맥주를 앞에 두었을 뿐 스테이지나 입구쪽을 바라보고 있었다.
'스테이지' 는 소박하다 느낄만큼 작았고 크게 볼품이 없었다. 셔플댄스가 어울릴법한 트랜디한 클럽음악에 많은 사람들이 스테이지를 메우고 있었다.
입구에서 받은 무료 맥주 쿠폰을 가져다 Bar로 향하기 위해 빽빽한 인파속 틈을 만들어 비집고 들어가 맥주를 받아들고선 잠시 Bar에 기대서서 맥주병에 입을 가져갔다. 
기대보다 아담한 규모에 실망했을 뿐아니라 몸치라면 둘째가라면 서러울 정도임으로 음악에 몸을 싣는 것에도 흥미가 좀처럼 돋지않았다.
잠시 머리를 흔들어대는 음악에 정신을 맏긴채 Bar 를 등지고 기대어 두리번 두리번 클럽의 분위기와 사람들의 표정들을 눈으로 익힌 후 인솜니아를 나와 클럽앞쪽 계단에 앉아 친구와 장미 꽃 파는 아이들을 바라보며 그들에 대한 이러쿵저러쿵 씁쓸한 추측을 쏟아내고 있었다.
장미 꽃 파는 아이들은 우리를 발견하고는 결점없이 하얀색 타일로 덮여진 클럽계단을 마치 넘어오면 술래라도되는 놀이의 경계선인양 넘어오지 못했다.
계단을 올라오면 클럽 앞을 지키던 덩치큰 사내들에게 혼날것이 뻔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아이들은 포기하지 않고 장난스러우면서 간절한 어투로 꽃을 내밀며 "하나만 팔아줘요" 번갈아대며 소리쳤다.
 한참 아이들의 모습과 거리가 뿜어내는 활기차면서 쓸쓸한 분위기를 느끼다 새벽 2시를 향해 흘러가는 시계속의 아라비아 숫자를 응시했다.
호텔로 돌아가기 위해 계단을 내려와 호텔 쪽으로 걷기시작할 때였다.
꽃을 팔던 한 여자아이가 견딜 수 없을 만큼 측은함을 이끌어내는 눈빛을 하고 나의 앞을 가로 막았다.
그 아이의 눈을 잠시 바라보다가 허리를 굽혀 아이의 눈높이에 맞추며 "난 꽃이 필요없어 하지만 이 꽃은 받았다 치고 꽃값은 치를테니 돌아가서 절대 다른 아이들에게 말하지 말아! 알았지?" 아이가 알아들었는지는 모르지만 고객를 끄덕이고 있었다. 지폐를 꺼내어 쥐어주자 아이는 그제서야 방긋 웃으며 지폐를 받아들고 도망치듯 아이들 무리로 돌아갔다.
다시 호텔로 돌아가는 길을 제촉하기 시작했을때 한무리의 아이들이 우리쪽으로 "내 것도 팔아줘요!" 시위를 하는듯 달려왔다.
당황하긴 했지만 빠르게 걸어 골목을 빠져 나오며 아이들을 향해 "Bye" 단어를 크게 내뱉으며 손을 흔들었다.
 아이들은 추격을 멈추고 바로 돌아서 자신들이 속한 골목으로 장난스럽게 뛰어갔다.
돈을 쥐어준 아이에게 배신감이 들긴했지만 다시 한번 그상황이 돌아와 그아이의 눈을 바라봤다면, 아마 다시 지폐를 꺼낼 수 밖에 없었을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맥주와 보드카의 기운에 감당하기 버거운 눈꺼풀을 이끌고 더욱 집요하게 호객행위를 하는 KTV 호객꾼들의 물리치며 더욱 원색적으로 채색의 농도가 짙어진 골목길을 해쳐 숙소로 돌아갔다. 









                                                                                               Posted by De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