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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은 도시 다른 세계를 가진 마닐라 여행(6)

 

같은 도시 다른 세계를 가진 마닐라 여행(6)

 

 

 

 

 

 

 

 

 

 

'마까빠갈(Macapagal)' 수산시장을 뒤로하고 점차 농도 짙어지는 노을을 따라 '어메이징쇼' 의 드라이브 웨이에 다다랐을 즈음엔 극장외벽의 원색적인  네온사인이 주변의 어둠을 앞도하고 있었다.
길게 굴곡진 드라이브 올라 매표소 앞 마지막 다섯개의 계단에 발을 싣으며 뒤를 돌아보니 드라이브 웨이 옆으로 넓고 긴 계단이 있었고 그아래로 관광버스 서너대가 줄지어 서 있었다.

직감으로 한국관광객을 태우고 온 버스임을 알아차렸다.

극장안으로 들어서자 공연시작을 기다리는 한국관광객들의 웅성이는 소리가 로비의 천장을 울리고 있었다.

얼마지나지 않아 공연이 시작되었다. 게이 또는 트렌스젠더 쇼의 대표적인 명소인 태국의 '알카자 쇼' 나 '칼립소 쇼'와 견주어 수준과 규모면에서 동급이란 정평이 난  'AMAZING SHOW' 였으므로 여느 관광객과 다름없이 기대와 약간의 설레임을 내려놓지 못하고 있었다.

그들의 화려한 무대연출과 의상, 춤 , 노래 등 공연의 모든 요소들은 관객들의 호응을 얻긴 충분했을지 모르겠지만, 여운을 남길만한 요소나 흥미로운 이야기 거리가 될만한 소재는 되지 않았다.     

 

 

 

 

 

 

 

 

 

 


'어메이징쇼' 극장 앞은 가로등 없는 2차선 도로와 그 앞으로 끝이 겨우 시야가 닿을 듯한 공터가 있었고, 어지럽고 무성하게 자라버린 키높은 잡초
빼곡히 공터의 빈칸을 메꾸어넣고 있었다.


멀리 시야가 닿을 만한 빌딩들의 불빛들이 궤도에서 벗어나버린 듯한 불안함을 잠재워주었고 간혹 지나치는 자동차 헤드라이트 샤워는 지루한 기다림을 달래주는 유일한 위안이 되었다.
몇대의 자동차를 지나쳐 보내며 히치하이킹이라도 하듯 무월광의 도로위에서 손을 흔들어 댄지 10여분만에 하얀색 택시에 몸을 던졌다.
  
택시에 올라타자 짧은 숨가픔을 억누르지도 못한체 택시기사의 우측 얼굴을 향해 호흡사이를 가다듬으며 또박또박 목적지를 읽었다.
"마카티 High Street please"
꽤 먼거리임을 알았기에 당연히 요금 협상이 있을 것이라 예상했을 뿐아니라 "적어도 350 ~ 400패소 정도는 준비해야겠다."는 생각에 지갑에 손을 밀어 넣고 있었다.

그런데 순박 하지만 다소 과묵한 인상의 택시 기사는 단번에 알아들었는지 얼굴을 살짝 비틀어 끄덕이고 출발하며 '미터기'를 켰다.

마닐라가 아닌 다른 도시였다면 미터기를 켜는 것이 당연한 수순이겠지만, 여기가 마닐라였기에 아무런 흥정이 없는 것이 오히려 너무나 어색하고 다른 의도가 있는 것이 아닌지 쓸데없는 의구심까지 들었다.
백미러로 비춰진 쌍커풀 짙은 택시기사의 눈과 얼굴표정을 읽으려 했지만 어떤 표정도 읽을 수 없었고 오히려 지루함이 가득한 얼굴이었다.
2차선 도로를 벗어나 대로로 나서면서 가격에 대한 흥정은 고사하고 어떤 대화의 의도조차 없음을 간파한 후 택시 창을 투과되어 보이는 야경에 집중 할 수 잇었다.

 

 

 

 

 

 

 

 

 

 

한 20여분을 달렸을까 여기저기 '크랙' 투성이었던 도로는 사라지고 흠을 찾아볼 수 없을 만큼 잘 포장된 도로가 펼쳐지더니 회색 이외 색감을 찾아 볼수 없던 건물들은 점차 잦아들고 색감을 머금고 글라스와 대리석으로 외장된 고층 빌딩들이 속속들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250패소를 택시비로 건네고 '포트 보니파시오'의 중심지인 "High Street" 돌아본 그곳에는 차도와 인도의 구분이 없던 거리가 아닌 확연한 구분과 질서가 자리 잡고 있었고, 쓰러져가는 노천식당 대신 커피전문점, 패밀리레스토랑, 스포츠 Bar 등이 정리된 구역에 입점해있었고, 인도 가장자리를 집으로  삼던 거리위의 부랑자들은 그 어느곳에도 찾아 볼 수 없었다.

믿을 만한 정보인지는 모르겠지만 '하이스트리트' 센터에 자리잡은 스타벅스 점원을 통해 흥미로운 사실을 알 수 있었다.
손님이 뜸한 틈을 타 커피잔을 받아들며  '말라떼'에서 수없이 마주쳤던 노숙자들이 이 거리에서는 찾아 볼 수 없음에 대해 물어보았다.
오히려 나의 질문이 받가운 듯 친절한 기운을 얼굴전체로 표현하며  "이곳에서는 구걸 행위와 노숙이 금지 되어있어요"라는 대답을 해왔다.
만약 이 남자 파트타이머의 말이 사실이라면, 노숙인이나 구걸인의 '마카티'지역 출입이 법으로 제재되거나 통제된다는 뜻이다.
점원의 말을 곱씹으며, 다시한번 둘러 보았던 거리를 되새김질하며 주위를 살펴보니 과연 노숙자 뿐만이 아니라 '말라떼'에서 너무나 눈에 익었던
초라한 행색은 찾아볼 수가 없었다.
자의건 타의건 거처가 없다면 필리피노라 하더라도 '마카티'지역을 활보 할 수 없다는 얘기가된다.
물론 빈부의 격차가 이곳만의 세삼스러운 스토리가 아닌것은 당연하다. 하지만 도시전체에 걸쳐 발효된 빈민 통제란 무척이나 많은 생각을 들게하는 '팩트' 였다. 

그곳에는 이념이 만들어낸 '철의 장막'이 아닌 '돈'이 만들어낸 보이지 않는 장벽이 분명 존재하고 있었다.
  

 

 

 

 

 

 

 

 

 


'하이스트리트'는 계획적이고 친환경적으로 주거지역 그리고 생활편의시설들이 혼재되어 설계된 곳이었다.

'분당'과 비슷한 느낌을 받긴 했지만 상점과 레스토랑들이 아기자기하게 복합적으로 어우러진 '하이스트리트' 분명 다른 경쟁력을 가진 듯 하다.
가장자리에는 오솔길을 연상케하는 살짝 굴곡진 인도가 줄지어 불을 밝히고 있는 상점들과 맞데어 조화를 이루고 있었고 거리의 중앙에는 넓은 잔듸 스퀘어와 현대적인 감각이 느껴지는 조형물들이 이어졌다.


4개의 잔듸 스퀘어를 걸어 막바지에 다다르자 최고급 콘도미니엄인 '세렌드라 피아자 광장'이 이어졌다. 

한껏 불을 밝힐 수 있는 어둠이 화려함에 일조를 했겠지만 이보다 더 격이 느껴지는 곳을 필리핀에서 찾아 보기 힘들 것 같았다.  
스타벅스에 눌러앉아 둥근 노천탁자 위로 치즈 케익과 라떼를 올려놓고 잠시 이틀간 어울릴 수 없었던 쾌적함을 잠시 즐긴 후 '하이스트리트' 시작이자 끝인 '마켓마켓'의 붉은 네온사인을 향해 걸어내려갔다.

 

 

 

 

 

 

 

 


'마켓마켓'은 여느 쇼핑몰과 마찬가지로 수많은 상점들과 소규모 놀이기구 그리고 푸드코트 등이 배치되어있었으므로 대도시 문화혜택에 익숙해 있는 그 누구에게나 딱히 특별할 것이 없었다.
'마켓마켓'의 중심부에는 동물모양 놀이 기구가 장난감차량 처럼 돌아다니는 큰 홀(Hall)이 있었는데 그 반대편 문으로 나서자, 채소 및 먹거리를 보기좋고 먹음직 스럽게 진열된 '피에스타' 재래시장이 연결되었다.

재래시장이라곤 하지만 규격화된 카트와 가판대는 매우 깔끔한 상태였고 DP된 상품들 또한 비위생과는 거리가 멀었을 뿐아니라 다양한 종류의 상품들이 분류가 잘 되어 가판대 위로 올라와 있었다.

 

 

 

 

 

 

 

 

 


다시 반대편으로 거슬러올라오며 'High street'에서 꽤 유명한 과일음료 카페 'Jamba juice'를 들러 입안 한가득 망고 등 열대과일으로 만들어진 슬러시를 채워넣으며 고급 레스토랑과 Bar 들이 즐비해있다는 'The Fort'거슬러 올라갔다.

 

 

 

 

 

 

 

 

 

 

 


'더 포트'는 네온사인위로 피라미드 모양의 하얀색 네온사인이 빛나는 독체 건물이 첫 대면을 청했다.
엄청난 규모는 아니였지만 심플하면서도 나름 빈티지한 감각이 충만한 그런 건물이었다.
건물의 내부는 소규모 레스토랑과 Bar 들이 수납된 듯 칸칸을 체워넣고 있었는데, 그 중 한두개의 레스토랑은 수 년전 생선요리가 기억에 남아있는 '산토리니' 해변가의 레스토랑이 떠올랐다. 심플&화이트를 강조한 인테리어 디자인이 감각적이었다.

 

 

 

 

 

 

 

 

 

 


여러동의 건물이 붙어 있는 것은 아니었지만 건물은 단순히 한,두건물만이 존재한다고 보긴 힘들었다.
1층에는 고급스런 레스토랑과 Bar 들이 수많은 외국인 관광객들을 끌어들이고 있었고 좌측으로 돌아가니 'Amber"라는 클럽이 있었다.
시상식이라도 있는 듯 이브닝 드레스를 챠려입은 여성들과 그에 반해 특별히 차려입은 것 같지 않은 남성들의 무리가 긴줄을 만들고 있었다.
주위에는 벤츠,BMW,아우디 등 값비싼 차량들이 속속들이 주차되고 있었다.
'엠버'외에도 클럽으로 보이는 ''PRIVE'라는 곳이 하나 더 있었는데 그 곳에는 몇몇사람이 기웃거릴 뿐 블랙 정장을 착용한 두명의 사내가 외로히
정문을 지키고 있었다.

이곳 클럽에는 슬리퍼나 민소매 셔츠를 착용하고는 출입이 되지않는 나름 드레스코드가 있다고 했다.
어제 밤 '말라떼'에서 경험했던 '소셜리스타'나 '인솜니아'와는 사뭇다른 포스가 느껴지기 까지 했다.
입구를 통제를 뚫고 들어가고 싶었지만 다음날 이른시간에 비행기 시간 때문에라도 잠시의 충동을 참기로 하고 택시를 잡아타고  숙소가 있는 '말라떼'로 돌아왔다.

 '마칸티'지역은 오히려 이국적인 흥미를 찾기엔 서울의 특정지역과 너무나 닮아 있었으므로 그저 커피와 케익을 곁들인 초여름 늦은 저녁 산책에
지나지 않았던 듯 하다.
지난 이틀 대부분을 지내며 어느정도 낮이 익었던 '말라떼'로 돌아오니 다시 거센 환락가의 불빛들이 몰아치고 있었고 깨지고 색을 잃은 회색빛 시멘트가 점령한 세상이 펼쳐졌다.
30분이 채 소요되지 않는 짧은 거리였지만 그들의 시간에는 30년 이상의 장막이 높이 드리워져 있는 듯 했다.
장막을 걷어내고 오래되고 색감잃은 회색 빛이 가득한 과거로 회귀한 늦은 밤 '같은도시 다른 세계를 가진 마닐라 여행'은 막바지에 이르렀다.

 

 

 

 

 

 

 

 

 

 

끔찍한 저가 항공이었지만 낮 비행기는 항상 비포장 구름 도로 위를 달린다는 착각이 들정도로 황홀한 구름 바다가 펼쳐짐으로 좁거나 건조한 약간의 불편함 따윈 오래동안 잊을 수 있다. 

하늘로 떠올라 내려다 보이는 마닐라의 시가지를 다시 한번 내려다 보며 지난 이틀간 같은 도시 다른 세계를 가진 마닐라 여행을 되돌아 보았다.

항상 여행의 이국적인 설레임은 한시적이지만 그곳에서 살아가는 사람들과 그들이 가진 환경 그리고 이야기 들은 기억속에서 영속성을 두고 이어지는 듯 하다.

이 법칙은 수많은 이야기를 들려주었던 마닐라 여행 또한 변함 없이 적용될 듯 하다.

'인트라무로스' 철창 사이로 비춰진 노숙자 가족과 그 반대편 골프장의 풍경, 클럽 앞 무리지어 새벽까지 '장미'를 팔던 아이들, 무장한 경비원들, KTV 앞 윤락가 여성들, 야타이 레멘의 묵지한 덩치에 여성스런 보이스를 가진 Josh, 바가지 택시와 호객꾼들 그리고 '돈의 장막'으로 가리워진 마카티와 말라떼의 스토리 등등 무엇하나 빼놓을 수 없는 씁쓸하고 슬프고 우스꽝스럽고 매혹적이며 흥미로왔던 표정으로 기억속 지도 위 장식 될 듯 하다.   

 

 

 

 

 

                                                                Posted by De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