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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은 도시 다른 세계를 가진 마닐라 여행 (3)


 

같은 도시 다른 세계를 가진 마닐라 여행 (3)




인트라무로스 그리고 철창 팬스로 경계지워진 빈부격차

우측으로 자를 대고 그은듯 반듯하게 끝이 보일듯 말듯한 긴 성벽이 쨍한 오후를 내달리고 있었다.
인트라무로스 외곽을 성벽은 어제 쌓은듯 정돈된 외형을 갖추고 있었지만 분명 세월의 흔적과 모진 역사의 굴레를 거쳐왔음이 분명했다. 
인트라무스는 16세기 스페인 혼혈계만이 거주 할 수 있도록 스페인 통치하에 지어졌는데, 그 목적은 필리핀 원주민으로 부터 공격을 막기위함이었다고 한다. 2차세계대전 미군과 일본군의 요새로도 쓰이며
많은 부분이 소실되었다고 한다.
산티아고 요새 향해 걷기 시작할때는 무릎이 시큰거려왔다. 인력자전거, 트라이시클, 말마차 등 바가지를 써도 만만한 교통수단들이 손을 흔들며 가격흥정을 해왔지만 성벽을 따라 걷기를 고집했다.
"발이 닿아야 꼭 제대로된 여행이다!"라는 도보여행에 대한 남다른 철학이나 집착이 있는건 아니었지만 산책이 즐겁기도 했고 빨리지나쳐버리면 무언가를 빠트릴 것 같은 느낌이 스치듯 들었기에 약간의 시큰거림은 어렵지 않게 무시할 수 있었다.




이런 선택에 보답을 하듯이 잠깐 생각해볼만한 아이러니한 광경이 걸음을 주춤주춤 느리게 만들었다.
 성벽앞에는 빈틈을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퀄러티가 좋아 보이는 잔듸가 촘촘하게 깔려 있었는데, 거긴 골프장이었다. 그리고 그 앞으론 철재 팬스가 보도와 골프장 사이를 구분짓고 있었다.
철재 팬스 안쪽에선 골프웨어를 차려입은 필리피노들이 골프를, 팬스 밖 보도 가장자리에는 드문 드문 노숙자 가족들이 자리를 잡고 아이를 달래거나 불을 피워 밥을 짓거나 손으로 흙을 주워먹듯 식사를 하거나 고단한 삶을 달래기 위한 낮잠을 청하고 있었다.
다음날 마닐라의 '강남'이라 불리는 즉, 마닐라의 부촌 '마가티'를 여행하며, 성벽앞 팬스 사이의 극심한 빈부격차를 이해하게 되었다.
물론 빈부격차는 뭔가
새로운 개념은 아니지만 '쉰들러리스트 기법'을 입힌듯 흑백과 컬러가 공존하지 않는 날카롭고도 극명하게 갈라진 그들의 일상이란 불구경처럼 유쾌하진 않지만 호기심가득한 진실이었다.





이윽고 성벽의 안쪽 인트라무로스 시가지로 접어들었다.
엄청난 교통량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따닥따닥 붙어 배열된 건물사이로 끊임없이 진입하고 있었다.




성벽쪽 작은 골목으로 접어들어 잠시 가늘게 뻗은 성곽 안쪽을 손끝을 스치며 성곽의 틈을 눈으로 헤아리듯 걷다가 500년의 역사를 자랑하는 필리핀 성당을 마주했다.
급작스럽게 시야를 꽉체운 고딕건축물의 등장은 당장은 새롭고 주위분위기를 압도하는
듯 했다.
그랬다 당장은 놀라웠다. 그러나 필리핀 성당을 정면으로 마주하고 내부를 잠시 둘러보고는 흥미를 자극할만한 디테일 이나 섬세함 그리고 웅장함은 발견하지 못했다.
물론 바티칸 시스티나 예배당 천장의 미켄란젤로
의 천지창조나 성배드로 성당의 조각상들의 섬세한 터치를 당연히 기대하고 있었던 건 아니지만 너무도 투박하고 단순한 내부는 마치 가구들을 모두 들어낸듯 텅빈 방을 보는 느낌이었다.     
  



성당 내부로 들어서자 수많은 필리핀 국내외 관광객들이 성당 뒷편에서 사진기 셔터를 연신 눌러대고 있었다.
성당내 인파의 웅성임이 높은 천장을 휘몰아 치고 내려와 메아리 치며 느긋하고 여유로움이 어울릴 법한
분위기를 숨가픈 소란스러움으로 바꾸어 놓고 있었다.
 잠시 의자 등받이에 양 팔꿈치를 내려놓으며 몸을 굽혀 멀리 정면의 성모마리아 상을 차분히 응시하다, 성당 앞쪽 이 부산스러움 속에서 무언가를 위해 간절히 기도를 하는
필리피노들이 눈에 들에 왔다.
기도하는 필리피노들 사이에는 감당되지 않는 소란스러움을 극복을 위한 노력은 느껴지지 않았다.
이 모든 소란스러움이 이해된듯 그들에게 놓여진 환경을 적응하기 보다는 선택하여 듣고 보는 듯 경건함이 느껴질 뿐이었다.






소박한성벽위 가로수 소로 산책

다시 자세히 둘러보지 못한 성벽쪽으로 향하며 'THE SEAFORT COMPLEX' 라는 제목의 안내문에 잠시 발걸음을 멈추었다.
안내문의 내용은 간략하게 간추리자면, 1592년 축조된 이성곽은 허술한 방벽으로 그 역사가 시작되었지만 Dutch(네덜란드)와
중국해적들의 침략 위협에 17세기에 견고하게 강화되었고 미 군정기에는 No.1 Victoria street로 더 잘 알려졌다고 한다. 1945년 마닐라에서 전투가 펼쳐졌을때 많은 부분이 붕괴되었지만 1980~1987년 사이 복구 되었다고 한다.



 


안내문 뒤를 돌아 성곽 계단을 올랐다. 크고 작은 공터가 자리잡고 있었고 가로수와 가로등의 에스코트를 받는 듯 이어진 인상적인 소로가 공터와 공터간을 이어주고 있었다.
아주잠깐 어두운 오후 퀘백시티의 상점없는 작은 뒷골목을 걷는 듯한 기분도 들었다.
소박한 좁고 얕은 가로수 성벽위 청량감이 드는 바람이 성벽을 내려올때까지 팔주위를 휘감았다.




선착장 위에서 런치...

산티아고 요새를 뒤로하고 울리다 지쳐버린 배꼽시계를 달래가며 곧장 다시 대로를 건너 오션파크 좌측에 위치한 시푸드 레스토랑 'Harbor View'로 향했다.
Harbor View는 여행객 뿐아니라 현지인들에게 유명한
시푸트 레스토랑인만큼 수많은 셀레브러티들의 '싸인'이 입구 우측편 벽한면을 빼곡히 장식하고 있었다.
좁은 입구를 지나자 스포츠 Bar가 보였고 비스듬히 왼쪽으로 바다가 훤히 보이는 야외테라스
가 바다를 향하고 있었는데 마치 선착장을 꾸며 만든 레스토랑 같았다.
 2열 종대로 정돈된 테이블 중 좌측 한곳에 자리를 잡고 웨이터가 메뉴를 건네기 무섭게 습관이 된듯 "산 미구엘 Please!" 라 구호와 같은 주문과 메뉴를 맞바꾸었다.

 메뉴를 뒤적거리다 도무지 어떤 요리를 시켜야할지 판단이 서지 않았을 뿐더러 더이상 메뉴와 씨름 하기엔 시간이 아까워 웨이터를 불러세웠다.
 "혹 추천해주고 싶은 메뉴나 인기있는 요리가 있으면 추천
부탁해요" 메뉴추천 요청에 웨이터는 잠시 망설이다 메뉴를 뒤적이며 메뉴의 그림들을 검지로 짚으며 "시푸드와 볶음밥 그리고 바베큐를 함께 즐기시면 좋으실것 같습니다. 오늘은 시푸드 요리로는  오징어 먹물요리가 좋습니다." 짧은 설명을 마치고는 나의 손끝을 응시하며 정적을 깨기를 기다렸다.
"오징어 먹물요리?" 짧은 망설임을 단호하게 물러치고 숙제의 정답을 얘기하는냥 웨이터가 불러준 메뉴를
손으로 짚어가며 주문하고 의자 등받이에 등을 펼쳐 기대었다.
그리고 산미구엘 한목음을 넘기며 좌측으로 보이는 마닐라 베이와 우측으로 보이는 오션파크 구조물들을 둘러보며 나른함을 다시 몸에 싣었다.






비주얼에 비해 조금 짭짤하면서 단백한 오징어요리는 만족스러웠고 바비큐는 나쁘지 않았다. 하지만 볶음밥은 짠 편이어서 숫가락과 산미구엘을 한모금을 번갈아 입으로 가져다 가며 짠맛을 덜어내야 했다.

만족할 만한 식사를 마치고 왔던길을 거슬러 올라가 늦은 오후에야 미적지근해진 열정에 불을 지피기 위해 호텔로 돌아와 몸을 뉘였다. 잠시 단잠에 빠졌다고 생각했다. 눈을 감았다 떴다 생각했지만 벌써 서늘한 어둠이 내려와 있었다.






마닐라의 밤, 수많은 얼굴과 표정들 그리고 마닐라 밤문화


서둘러 머리를 대충 수습하고 프론트로 내려갔다.
거리로 나서자 어제 밤 어색하게 첫 대면을 했던, 그 도시, 익숙한 네온사인들이 골목골목을 몇되지 않는 원색적인 컬러로 물들이고 있었다.
호텔앞에 우두커니 서서 눈을 비비적 거리며 좌우를
두리번 거리며 방향을 잡지 못하고 발길을 망설이고 있을 때였다.
어떤 필리핀 중년남자가 서슴없이 다가와 코팅한 전단지를 내밀며 "Very beautiful ladies"를 반복적으로 속삭이는 동시에 전단지 위에 프린팅된 윤락여성들의 사진을 가리키며
호객 행위를 했다.
그제서야 난 발걸음을 빨리 움직이며 "No"를 반복하며 '레메디오스 써클' 쪽으로 바삐 발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10미터 정도 따라오던 호객꾼이 포기한듯 거리를 두자 바통 터치를 하듯 뛰엄뛰엄 서있
던 또 다른 호객꾼들이 차례대로 접근 해왔다.
몇차례 호객꾼들을 따돌리고 나서야 저녁 생각에 레스토랑을 찾다가 한글로 적힌 몇몇 레스토랑을 유심히 봐오던 동행하던 친구가 '코리안 바베큐'란 레스토랑을 가르키며 "한국음식점 저기가자
!" 팔을 끌어당겼다.




 코리안 바베큐와 볶음밥을 주문했지만 웬만한 한국 양념치킨과는 비교도 안될 정도로 매웠고 볶음밥은 'Harbor view'에서 맛본 짠 맛과 다를바 없었다. 
사장 또는 주방 책임자가 한국인이 아니라는 것을 직감하며 대충 배를 채우고선 다시 거리로 나섰다.
여기저기서 흘러나오는 라이브 음악과 현란한 네온사인, KTV(노래방)앞 줄지어선 드레스 차림의 아가씨들의 애써 웃음짓는 손짓, 노천카페에 옹기종기 모여앉아 음악소리에 따라 소음을 더하는 사람들, 무표정한 얼굴로 수레를 끌고 취객들에게 견과류나 열대과일을 건네는 거리상인들, 노천 카페가 놀이터인냥 뛰어놀다 외국인에게 꽃을 팔거나 동냥을 하는 아이들, 그 아이들을 가로막는 경비원들과 카페 점원들...
 너무나 많은 얼굴들과 거리의 표정들 그리고 소음들이 윈도우쇼핑하듯 발걸음을 옮기게 하였다.
한참을 밤거리 풍경요소들을 주워 담다, 한번 지나친듯한 허름한 노천카페로 단골고객처럼 주저없이 많은 외국인들 사이를 비집고 들어갔다.
 마음에 드는 자리를 잡고선 산미미구엘을 주문하고 시끄럽게 울려 퍼지고 있는 음악에 
정신을 놓고 있을때 동네에서나 본듯한 한국인이 틀림없다는 확신이 가는 아저씨가 카페 안쪽으로 들어가더니 어려보이는 점원들에게이것저것 지시하는 것이 눈에 띄였다.
 주위 카페를 둘러보니 이곳 만큼 장사 잘되는 곳은 없는 듯
했다.
뭐... 해외에서 한국인이 운영하는 상점이나 카페를 처음 들러보는 것은 아니지만 허름하긴 하지만 앉을 자리가 없어 서서 기다리는 백인들이 있을 만큼 잘나가는 카페의 주인이 한국사람임이 기분나쁘진 않았다.

친구와 이런저런 이야기를 6병의 산미구엘이 든 큰 양동이를 비우고서야 자리를 일어나 다시 '레메디어스서클'쪽 마닐라의 밤문화 안으로 걸어들어가기 시작했다.








                                                                               Posted by Dee